지난 11일 밤에 세상을 떠난 문여송 감독의 마지막 모습을 본 것은 1년 전 어느 봄날이었다. 과거부터 그가 자주 찾던 서울 명동의 퍼시픽호텔 커피숍에서였다. 빈 찻잔을 앞에 두고 혼자 앉아 있던 그를 오랜만에 만나 지금 어떻게 지내느냐는 물음에 그는 힘없이 말했다.
“영화 한편을 꼭 만들고 싶은데 그게 잘 안 풀려요. 그냥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요.”
언제 만나도 목청을 돋우어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던 자신만만하던 표정은 연세 탓인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쉬지 않고 묻고 대답하며 말하기를 좋아하던 사람인데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희수(喜壽 77세)에 영화감독의 생애를 접었다. 1970년대에 청소년 관객층을 겨냥한 <진짜진짜..> 제목을 단 시리즈 영화로 명성을 누렸던 그는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영화제작 현장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는 날까지 충무로를 떠나지 않았다. 늘 영화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며 제작자와 배우를 찾고 있었고 하루의 생활반경도 충무로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이미 충무로 시대가 끝나고 영화인과 영화사들도 충무로를 떠나고 없었지만 충무로는 그의 일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의 터전이었다.
반듯한 미남형 얼굴에 패션감각도 뛰어난 문감독은 언제 봐도 깔끔한 신사였다. 남자지만 팬티의 곡선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해 노팬티로 바지만 입는다고 해서 화제에 오른 일도 있다. 그는 멋을 부릴 줄 아는 멋쟁이였고 여자 연기자를 보는 안목도 특출했다. 발굴한 연기자를 제대로 키우는 스타메이커로도 이름을 날렸다. 제주도가 고향이지만 일본에서 살았던 그는 도쿄대 예술학부를 졸업하고 그곳에서 감독활동을 하다가 30대에 귀국해 1975년 <진짜진짜 잊지마>로 시작된 하이틴 흥행영화 시대를 열었다. 임예진 이덕화 김보연을 인기스타로 등장시키고, 한 때는 탤런트 김영란을 영화로 불러내 <처녀의 성> <아스팔트 위의 여자> <독신녀> 등 멜로영화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이어서 최선아를 찾아내 <짧은 포옹 긴 이별> <사랑만들기> <안녕 도쿄>를 직접 기획 연출하거나 제작까지 하는 시기도 있었다.
그의 만년은 고독했다. 50여권의 창작 소설집을 출간하며 인기를 누리던 김이연 소설가와 3남매를 두고 행복한 부부의 모델로 수시로 메스콤을 타던 때가 있었지만 어쩐 일로 소리없이 헤어지는 불행이 따랐다. 기자는 그때 김이연 여사에게도 직접 이유를 물어 본 적이 있지만 결별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아마도 남들이 모르는 부부 사이의 누적된 불만이 있었던 것 같았다. 오래전의 일이다. 그로부터 문감독은 가정적으로도 불우했지만 활동도 부진했다. 그러나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월과 나이였다. 1970년대 하이틴 영화 시대를 이끌던 김응천 석래명 감독도 오래전 떠났고 이제 문여송 감독도 떠났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가는 화려하던 충무로 시대 주역들과의 이별이 겨울 냉기만큼 차가운 바람이 되어 가슴에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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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여송 /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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